# 만옥정이야기 #
(만옥정의 야경 )
만옥정은 어린시절 낭만이 뭍어 있는 공원이다
만옥정하면 우리들의 추억담은 침을 튀게 한다
화장한 봄날의 밤에 벚꽃가루 휘날림속의
화려하고 재밋는 콩쿨대회를 빼 놓을수 없지
명덕못의 솔밭과 더불어
창녕의 청춘남녀들의 데이트장소로 유명하였지....
그러나 그 만옥정엔
국보 33호를 비롯해 많은 문화재가 있었단다 ~~
벚꽃놀이를 추억하는 옛날과 지금의 만옥정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 버린후라 좀 어색하기까지 하다
벚꽃이 공원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였는데
지금은 많은 휴게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현대화의 공원정비도 좋지만
난 왠지 옛모습이 그립다
그 옛날을 추억하면서 벚꽃아래로 걸어보며
국보와 문화재를 한번 둘러봅니다
( 진흥왕 척경비 )
국보 제 33 호인 신라진흥왕 척경비 입니다
원래 화왕산 기슭에 있었는데
소풍갔던 창녕국민학교 어린이가 발견하여
1914년에 현 장소로 옮겼다고 합니다
어릴땐 웬 넙덕한 바위 한개 세워놓고
집까지 지어 주었나고 어아해 했는데......
그리고 우린 "진흥왕순수비" 라고 불렀습니다
비문의 내용은
"왕이 점령지를 다스리는 내용과
이에 관련된 사람들이 열거돼 있답니다"
( 창녕객사의 모습)
이 창녕객사는 우리 초등학교시절엔
창녕읍 시장통 안에 있었습니다
이 객사에서 싸전등 5일장이 객사 주위에서 열렸죠
시장 건물치곤 크고 웅장하다고만 생각하고 지냈는데....
이 객사는 타 지방의 관원이나
외국사신이 묶는 숙소로서
임금과 대궐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는 곳이랍니다
창녕현 관아의 부속 건물로
300 ~ 400 년전에 지어졌을거라 추정된답니다
창녕읍 시장통에 있을때도
지금처럼 외부벽체나
내부 칸막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손님맞는 객사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비 오는 장날에는 참으로 유용하였죠
많은 사람들이 비를 피할수 있었으니까요
( 창녕척화비 )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반갑고 씁쓸한 대원군의 창녕척화비입니다
이 척화비를 발견하고 직접 만옥정으로 옮긴
고마운 어르신의 직계 후손들이 살아 그때 상황을 증언하는데도
이 척화비가 어찌하여 여기 있는지 당국에선 까맣게 모르고 있다니....
이 척화비를 볼때마다 하명돈동기의 아버님께
무척 감사한 마음이 드는건 저 뿐만 아니겠지만
기회되면 당국에 알려야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하명돈동기의 증언에 의하면
이 척화비는 50년전에 만옥정으로 옮겨 졌습니다
( 만옥정의 퇴천3층석탑 )
이 석탑은 퇴천부락의 한 민가에 무너져 있는 것을
1969년 10월에 해체,수리하여 지금위치로 옮겼답니다
비교적 큰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꼭대기부분은 떨어져 없어 원래모습 알수 없지만
몸체, 받침돌 등이 균형이 잘 이뤄진 우수한 석탑이랍니다
통일신라의 말기의 작품으로 추정.
솔직히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은
모양이 서로 달라 구분이 좀 되는데
이런 종류의 석탑은 특징등 구별이 어렵습니다 ㅋ~~
그냥 혼을 담아 아름답게 만들어진
선조의 숨결을 느낄수있는 석탑이라고만 생각합니다
좀 조잡한 설명과 사진들이지만
만옥정 이야기는 여기서 끝을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