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소식과 여행

고향의 멋 - 교동고분군

볼락 2008. 2. 24. 00:37
 
   " 창녕교동 고분군 "  

          (교동고분군의 모습)   
이 교동고분군은 추억의 장소이다
어린 악동시절 여름철에
명덕지에서 멱감고 놀다
이 주변에서 많이 놀았던 정다운 곳이다
그 당시는 고분군이 이렇게 크지도 않았고
메똥(묘지)이 좀 크고 많다고 느꼈을 정도인데....
경주로 대변되는 신라의 왕릉은 평지에 만들었고
교동및 계성고분군등의 가야 왕릉(왕,귀족)은 산지의 언덕에 
축조 된게 가야와 신라의 다른점 이란다

            ( 어머니 품안같이 포근함이 ...)   
문화재로 가치를 인정받아 복원이 되고 나니
이런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정말 묘지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이다
교동고분군등 왕족. 귀족의 무덤은
모두 살아 생전에 권력과 금력이 막강할때 만들어 졌다

               ( 창녕박물관 전경 )   
창녕의 박물관 모습입니다
이곳엔 교동고분군의 출토품만 아니라
계성고분군등 창녕의 각종 유물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 박물관 측면의 고분군)   
이 고분군은 박물관 좌측면에 있습니다
즉 목마산성 아래쪽에 위치합니다
아주 먼 옛날엔 한 장소 였었겠지만
도야, 고암면으로 가는 도로때문에
나눠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래도 이길로 도야의 우리동기들
 이길을 통해 명덕으로 등하교 하였습니다
밤길은 좀 무섭기도 하였습니다

        (  주차장에서 바라본 도야,하동부락모습 )
주차장에서 도야, 하리마을을 보며
초등동기 생각으로 잠시 웃었습니다
땡땡이 장소로 이 고분군을 이용 했을테니까요    

 (박물관에서 유물등을 설명하는 문화해설사 성창식선배님) 
박물관에 들렀습니다
토요일이라 저와 합천에서 왔다는 가족과
모두 다섯명이 함께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냥 둘러보는것 보다 문화해설사의 설명들으며 관람하니
참으로 유익한 역사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해설사로 봉사하시는 저기 저분은
명덕초등 16회 졸업생으로 한해 선배님인데
참으로 반갑게 인사 나눴습니다
이 선배님으로 부터 관룡사 대웅전앞의깃대봉의 정명이 
괘불대(掛佛臺)라는것도 알았습니다
선배님의 상세하고 친절한 해설에 감사드립니다
혹시 단체또는 혼자라도 고향가셔서 문화재 해설을 원하면
창녕박물관에서 성창식선배 찾아 부탁하면
언제라도 기꺼이 봉사하신다니 도움받으시길 바랍니다
 
         ( 순장(殉葬)으로 추정되는 고분군의 내부모습 )   
순장(殉葬)이란
지배층에 속한 인물을 장사지낼 때 주변 사람들을 함께 묻는 것으로
순사(殉死)·순송(殉送)이라고도 한다. 
자진해서 죽는 경우도 있었으나 강제로 묻히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산 채로 묻는 일도 있었으나 죽여서 묻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말이나 개를 함께 묻는 것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순장은 사회가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뉜 뒤 
고대 초기에 널리 유행한 장례풍속이었다. 
고고학적인 조사를 통하여 순장사실이 확인되는 경우는 
양산 부부총(夫婦塚), 경주 황남동 98호분, 의성 탑리고분 등이 있다. 
특히 가야지역 고분에서 많은 사례가 발견되는데 
창녕 계성리 고분, 고령 지산동 32,34,45호분, 고령 본관동고분군, 
동래 복천동 11호분 등이 대표적이다. 
순장을 하는 풍습은, 지배층은 죽어서도 살아서와 같은 생활을 
누려야 한다는 믿음에 뒷받침되어 행해진 것이었다.
                       ( 다음백과에서 발췌)
저 주장지와 순장지의 표기아래부분에
저 사람들의 실제 시신이 있는 무덤이 있단다
많은 고분군아 도굴된 안타까움이 있지만
아직도 발굴이 안된것도 있답니다
교동고분군의 진정한 보물들은
일본의 전문도굴꾼이 찬탈해 가서
이젠 일본국립박물관에 창녕교동고분군 출토품이라며
버젓히 안내문까지 두고 전시돼 있답니다
언젠가 그 출토품이 고향으로 돌아오길 소망합니다


             ( 보부상(褓負商)의 유품들 )  
보부상(褓負商)이란
행상인 부상(負商)과 보상(褓商)을 총칭하는 명칭이다
부상은 무게나 부피가 크고 값이 비교적 낮은 상품을 
지게에 짊어지고 다니면서 판매하는 등짐장수를, 
보상은 부피가 적고 가벼우며 비교적 비싼 상품을 
보자기에 싸서 들고 다니거나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면서 
판매하는 봇짐장수를 말한다. 
요컨대 부상과 보상은 
취급하는 상품이나 운송수단에 의해 구분된다. 
보부상은 단체를 이루어 행상활동을 조직적으로 영위하기도 했다. 
보부상단은 부상(富商)에 의해서, 
또는 영세한 행상들의 자구적인 노력에 의해서 조직되었다
                          (다음백과에서 발췌)
옛부터 창녕지방은 영남의 상업활동의 큰 역할을 담당했던
보부상들의 중요 활동영역으로 발전한 지방이란다
그 예로 창녕장이 영남에선 큰장의 하나였다는데....
장부를 살펴보면 참 재미가 있다
사(4)는 넉 사 (四)대신에 방자할 사(肆)를 사용했으며
오(5)는 다섯오(五) 대신 다섯사람 오(伍)를 사용했으며
육(6)은 여섯육(六) 대신에 붙육 (陸)을 사용했으며
칠(7)은 일곱칠(七) 대신에 옻 칠(漆)을 사용해 위조를 막았다
장부정리에도 그렇지만 한지에 쓴 어음엔 특히나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이렇게 금액을 쓴뒤 인장을 찍었단다
원래는 "보부상"이 아니고 "부보상"이였는데
일제시대 왜놈들이 의식을 바꾼다고
"보부상"으로 바꿔 부르게 해서 "부보상"이 "보부상"으로 됐답니다
차라리 "등짐장수"와 "봇짐장수"가 더욱 정겹게 들립니다
오늘은 교동고분군을 위주로 횡설수설하였습니다
길고 재미없는글을 끝까지 읽으신분은 
복 많이 받으시도록 빌어 드리겠습니다